디지털 유산

한국에서 디지털 유산은 법적으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unsere-haus 2025. 7. 13. 08:01

디지털 유산은 이제 현실적인 ‘상속의 대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디지털 기반 사회다. 한 사람의 삶은 이메일,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클라우드, 인터넷 쇼핑 내용, 전자지갑 등 수많은 디지털 공간에 분산되어 남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계정과 콘텐츠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과거에는 사망자의 재산 상속이라 하면 예금, 부동산, 자동차 등 유형의 자산에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누군가의 블로그에는 수십만 명이 방문하고 광고 수익이 발생할 수 있으며, 유튜브 채널에는 고인의 목소리와 생각이 담긴 영상들이 저장되어 있다. 또한 이메일에는 각종 계약서, 사진, 인증 정보가 남아 있을 수 있고, 카카오톡에는 가족 간의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치 있는 디지털 자산들이 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법률은 아직 디지털 유산을 독립된 상속 대상으로 명확히 정의하고 있지 않다. 현행 민법 제1005조에서는 "상속은 사망자의 재산에 속한 모든 권리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때의 '재산'에 디지털 자산이 포함되는지 여부는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법적 공백이 존재하는 지금, 플랫폼은 각자의 약관에 따라 사망자 계정을 삭제하거나 봉인해 버리고 있으며, 유족은 고인의 콘텐츠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한국에서 디지털 유산은 법적으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민법으로는 디지털 유산을 완전히 다룰 수 없다.

한국의 민법은 기본적으로 유형의 자산과 명확한 권리관계가 있는 무형 자산을 상속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메일, SNS 계정, 클라우드 저장 데이터와 같은 디지털 자산은 아직 그 법적 성격이 모호하다. 예를 들어, 이메일 계정은 단순한 소유권이 아닌 '서비스 사용 계약'의 형태이기 때문에, 사망과 동시에 사용 계약이 종료된 것으로 해석되며, 타인이 그 계정에 접근할 법적 권리를 갖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2017년 대법원은 사망자의 다음 이메일에 접근을 요청한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판결은 "이메일 계정은 사망과 함께 소멸하며, 유족에게 그 내용에 대한 열람권이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대부분의 플랫폼 이용약관에는 계정의 양도·상속 불가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민법상 상속권이 있더라도 플랫폼의 정책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이처럼 법률과 서비스 약관이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결국 플랫폼이 정한 약관이 우선 적용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정 상속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여도, 실제 실행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법과 민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망자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유족의 알 권리·접근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 본 한국의 입법 공백

해외에서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보호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미 2015년에 '통합 디지털 자산 접근 및 관리법(RUFADAA)'을 통해 상속인이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이 법은 사용자가 생전에 유산 관리자를 지정해 두었거나, 유언장에서 계정 접근을 허용했을 경우, 법원이 그 권한을 인정하고 플랫폼이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 역시 GDPR(일반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근거로 사망자의 데이터 처리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으며, 프랑스, 독일 등은 디지털 유산을 상속 대상으로 본 판례를 통해 점진적으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단일 법령이 없고, 민법,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여러 법률에 관련 조항이 분산되어 있다. 이는 실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명확한 기준이 없어, 유족이 플랫폼마다 개별적으로 요청하고, 각 기업이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 2022년부터 몇몇 국회의원이 ‘디지털 자산 상속 법률안’을 발의하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인 논의나 통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상속인이 사망자의 클라우드, 이메일, SNS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망진단서, 관계 증명서, 법원의 명령서 등 복잡한 서류 절차를 거쳐야 하며, 대부분 거절당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은 '삭제는 가능하지만 열람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유족의 권리가 현저히 제한되고 있다.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주요 쟁점들

한국에서 디지털 유산을 법적으로 다루기 위해 해결해야 할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계정의 법적 성격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부분의 온라인 서비스 계정은 ‘비 양도성 서비스 계약’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상속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수익이 발생하거나 고인의 유산으로 간주할 수 있는 콘텐츠를 담고 있다면, 해당 계정 자체 또는 계정 내 콘텐츠의 상속 가능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둘째, 사망자의 프라이버시와 유족의 권리 간 충돌 문제가 있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사망자의 정보도 보호 대상에 포함되며, 이에 따라 플랫폼은 유족의 요청이라 하더라도 계정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족 입장에서는 고인의 마지막 기록을 보고 싶거나, 중요한 정보(예: 계약 문서, 금융 인증서 등)를 복구하고자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법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 판단의 문제이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셋째, 디지털 유산에 대한 유언장 효력 인정 여부다. 일부 전문 변호사들은 디지털 자산의 목록을 유언장에 명시하거나, 유산 관리자에게 구체적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 추후 상속 과정에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 법원은 아직 이러한 유언의 구체적 효력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가 드물며, 법률적 판단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다. 결국, 사망 전 당사자가 얼마나 명확히 의사를 남겨두었는지가 관건이 된다.

 

제도화 이전에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준비

법률이 정비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 개인이 미리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고 설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예를 들어, 구글·애플·페이스북은 ‘비활성 계정 관리자’, ‘디지털 유산 연락처’, ‘계정 관리자 지정’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면 사망 이후 특정인에게 계정 접근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는 열람은 허용하지 않지만 삭제 요청은 가능하므로, 사전에 가족과 계정 정보를 공유하고 데이터 백업을 진행하는 것이 필수다.

또한 중요한 이메일, 문서, 계약서, 인증 정보는 계정이 아닌 별도의 백업 수단으로 정리해 두고, 일정한 주기로 클라우드 외장 드라이브에 이중 저장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디지털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다. 디지털 유산 목록, 접근 방법, 보관 위치, 전달 방식 등을 문서화해 두면 향후 가족이 혼란 없이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결국, 디지털 유산의 법제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법이 아닌 개인의 정리와 의사 표현이 유일한 해결 수단이다.
한국 사회가 이 새로운 유형의 유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제도적으로 다듬기 전까지는 개인의 준비가 곧 가족에 대한 책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