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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가상현실과 메타버스로 확장되는 디지털 추모의 공간들

‘디지털 공간에서의 추모’가 가능해진 시대

예전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묘지나 납골당 같은 물리적 장소를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식도 점점 더 ‘비물질화’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며, 장례식과 추도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에 따라 VR과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추모 공간’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공간들은 단지 고인의 사진이나 이름을 나열하는 디지털 납골당이 아니다. 이제는 고인의 모습, 목소리,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 가족의 메시지, AI 기반 대화 인터페이스까지 결합되며 감정적 교류가 가능한 추모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즉, 우리는 이제 단순히 ‘기억하는 공간’을 넘어서, 다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죽음을 둘러싼 문화적 관점이 변하고 있다. 묘비 대신 디지털 홀로그램, 제사상 대신 VR 공간이 만들어지고, 추모는 한 번의 행사에서 지속적인 ‘디지털 관계 유지’의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상현실과 메타버스로 확장되는 디지털 추모의 공간들

 

VR과 메타버스 기술이 바꿔놓은 추모 경험

가상현실(VR)과 메타버스는 단지 현실을 모방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을 시각화하고 감정을 재현하며, ‘부재한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매개다. 예를 들어 한국의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사망한 딸을 AI 기반 VR로 재현하여, 어머니가 가상현실 속에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와 같은 사례는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인간 감정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고인의 음성, 걸음걸이, 말투, 웃음까지 가상현실 속에 구현되면, 남겨진 가족은 이전에 불가능했던 ‘정서적 작별’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또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도 메타버스 공간에 접속해 같은 시간에 함께 추모하거나, 가상 제사를 지내는 것도 가능해진다. 특히 WebXR 기반 기술은 브라우저로 바로 접속할 수 있어 장벽이 낮고, 모바일에서도 참여할 수 있으며 디지털 추모 문화는 점차 대중화되고 있는 흐름을 보인다. 이는 가족이 함께, 혹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고인과 마주하는 시간’을 설계할 수 있게 만들며, 기억을 더욱 개인화되고 맞춤화된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실제 디지털 추모 플랫폼들 – 어디까지 진화했는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메타버스 기반 추모 플랫폼이 개발되고 있으며, 일부는 상용 서비스로 운영되고 있다. 다음은 현재 주목할 만한 플랫폼 사례들이다.

1) HereAfter AI (미국)

  • 생전 사용자의 인터뷰 데이터를 바탕으로 음성 기반 AI 챗봇을 생성
  • 가족은 사후에도 AI로 구현된 고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음
  • 정서적 위안과 함께 생애사 전달, 가족 역사 보존의 목적도 지님

2) If I Die

  • 사용자가 생전에 작성한 영상 메시지를 사망 시점에 지정된 가족에게 전송
  • 디지털 유언장 + 추모 메시지 전송 플랫폼으로 확장 중

3) Metaverse Memorial Halls (일본, 한국 중심)

  • 고인의 아바타, 영상, 글귀 등을 3D 공간에 배치한 인터랙티브 추모관
  • 가족 구성원들이 직접 접속해 함께 추모하거나 메시지를 남길 수 있음
  • 일부는 종교의식도 메타버스 공간에서 구현함

4) Replika Memorial Mode (개발 중)

  • Replika AI 기반으로 고인을 AI 챗봇 형태로 구현
  • 사망 후에도 대화를 통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 중

이러한 플랫폼들은 단지 기술적인 실험을 넘어서, 추모의 지속성과 정서적 치유를 위한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향후에는 이들 공간이 블록체인 기반 인증, AI 감정 분석, 가족 간 공유 기능 등과 연동되어 더욱 정교한 디지털 추모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이 감정을 다룰 때 – 윤리적 쟁점과 문화적 논쟁

디지털 추모 공간이 감정적으로 유의미한 경험을 제공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윤리적 질문과 문화적 저항은 피할 수 없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은 고인의 동의 문제다. 생전에 디지털 추모 공간에 자신의 정보가 사용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을 경우, 유족이 대신 결정해 가상공간을 만들었을 때 그것이 고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한 AI 기술로 생성된 고인의 모습이 고인의 진짜 의도와 다르게 표현되거나,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근거한 가상 공간이 만들어질 경우, 유족 간 기억의 왜곡과 감정적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추모 방식이 ‘산 사람의 위안’을 위해 고인을 소비하는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종교적 관점에서도 이러한 방식은 논란이 있다. 특히 전통 의례 중심의 사회에서는 가상공간의 제사나 추모가 정서적 공감이나 영적 효력을 갖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방식은 문화마다 천천히 움직인다. 따라서 디지털 추모 공간이 진정한 위로가 되려면, 기술적 완성도 뿐만 아니라 윤리적 투명성, 문화적 감수성, 개인의 자율성과 동의가 존중되어야 한다.

 

추억은 어떻게 공간이 되고, 공간은 어떻게 위로가 되는가

가상현실과 메타버스 기반의 디지털 추모 공간은 결국 기억을 감각화하고, 부재를 다시 만나는 공간적 감정 경험을 제공한다.
이 공간은 단지 정보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랑과 상실, 후회와 회복이 공존하는 **감정의 장(場)**으로 작동하게 된다.

고인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슬픔을 표현할 수 있고, 작별 인사를 늦게라도 건넬 수 있고, 기억을 꺼내어 다시 정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추모라는 감정의 과정을 더 안전하고 깊이 있게 만드는 기술적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묻게 된다. “기억을 위한 공간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기술이 기억을 저장하는 그릇을 바꾼다면, 추모는 더 이상 의식이 아닌 ‘삶의 일부’로 다시 설계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지금 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안의 작은 디지털 방 하나일 수 있다. 그 방에서 우리는 고인을 기억하고, 자기 자신을 위로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