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도 상속 갈등의 불씨가 된다
상속 분쟁은 오랫동안 금전적 유산, 부동산, 가족기업 등을 중심으로 다뤄져 왔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의 디지털 공간 속에서도 실질적인 ‘자산’이 형성되며, 그로 인한 갈등과 법적 분쟁이 나타나고 있다. 이메일, 유튜브 채널, 블로그, 암호화폐, SNS 계정, 클라우드 데이터, 쇼핑 포인트 등은 누적되면 수백만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으며, 단순히 데이터가 아니라 수익과 권리가 얽힌 자산으로 변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 심지어 가족들조차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 존재 여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접근 방법을 몰라 처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생전의 기록을 열람하려 했지만 플랫폼의 보안정책에 막혀 실패하거나, 누가 계정을 인계받아야 하는지를 두고 형제간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블로그, 유튜브, 암호화폐처럼 수익이 발생하거나 교환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산은 단순한 감정적 기록이 아니라 ‘법적 재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상속 대상에서 누락되거나 처리 순서가 불분명할 경우 분쟁의 씨앗이 되기 쉽다.
실제 사례 ①: 수익형 유튜브 채널 상속 갈등
첫 번째 사례는 한 40대 남성이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과 구글 애드센스 계정이 상속 분쟁의 핵심이 된 경우다. 이 채널은 자동차 리뷰를 주제로 월 300만 원가량의 광고 수익을 발생시키고 있었으며,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한 상태였다. 해당 남성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배우자와 형제 사이에서 계정 인계와 수익 귀속을 두고 갈등이 발생했다.
문제는 유언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튜브 계정과 애드센스 계정 모두 고인이 1인 명의로 운영하던 상태였으며, 구글은 개인정보 보호와 정책에 따라 계정 접근을 차단했다. 배우자가 법원 명령을 받아 계정 삭제는 요청했지만, 콘텐츠 백업이나 수익 이전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채널은 사망 후 3개월 만에 자동으로 비활성화됐다.
형제 측에서는 채널 제작에 일부 기여했다며 콘텐츠 공동 저작권을 주장했고, 결국 유족 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법정 공방까지 이어졌다.
이 사례는 디지털 자산이 상속 대상으로 분명히 간주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망 전에 채널의 귀속, 수익의 권리, 콘텐츠의 권한에 대한 법적 정리가 없었기 때문에, 고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분쟁이 확대된 것이다.
실제 사례 ②: 암호화폐 계정의 접근 불능
두 번째 사례는 암호화폐 관련 자산의 상속 문제다. 30대 남성이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약 4천만 원 상당의 디지털 자산이 사망 이후 전혀 처리되지 못한 채 남겨졌다. 이 남성은 **메타마스크(Meta mask)**와 바이낸스를 통해 자산을 관리했으나, 별도의 개인 키나 2차 인증 정보를 가족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사망 이후 가족들은 그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고, 여러 거래소에 접근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거래소 측은 “본인 확인 불가 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며, 메타마스크처럼 자체 호스팅 지갑은 비밀번호 또는 시드 구문이 없으면 복구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유족은 약 4천만 원에 달하는 자산이 존재하지만, 실질적 접근 불가능으로 상속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사례는 디지털 자산 중 암호화폐처럼 고도의 보안성과 개인 의존성이 높은 자산은 생전에 공유하지 않으면 복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법정 상속권이 있더라도, 기술적 장벽은 법으로도 넘을 수 없는 한계가 된다.
분쟁의 근본 원인: 준비 부족, 정보 비대칭, 플랫폼 제한
이처럼 디지털 유산 분쟁은 대부분 준비 부족과 정보 비대칭에서 출발한다. 고인이 생전에 어떤 디지털 자산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보유하고 있었는지를 가족이 파악하지 못하면, 해당 자산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복수의 상속인이 존재할 경우, 그 자산이 누구의 몫이 되는지를 두고 감정 갈등으로 비화하기 쉽다.
특히 가족 중 일부만 그 자산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접근 권한을 독점한 상태라면, 나머지 상속인들은 공정하지 않은 상속이 이루어졌다고 판단할 여지가 크다. 이는 결국 법적 분쟁, 신뢰 붕괴, 가족관계 악화로 이어진다.
여기에 플랫폼의 정책 제한도 한몫한다. 대부분의 글로벌 플랫폼은 ‘개인 정보 보호’를 내세워 계정 접근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으며, 상속인이라 하더라도 법원 명령이 없는 한 계정 복구나 콘텐츠 열람을 허용하지 않는다. 법률적으로는 상속이 가능하더라도, 기술적으로 플랫폼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실질적 상속은 불가능해진다. 이런 경우, 분쟁 해결의 방법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분쟁을 막기 위한 실질적 예방책 5가지
디지털 유산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핵심은 ‘생전 정리’다. 고인이 사망한 후에 상속인이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생전에 본인이 직접 디지털 자산을 목록화하고, 향후 처리 방법을 문서로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다음 다섯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 분쟁 예방의 핵심이다:
- 디지털 자산 목록화
– 이메일, SNS, 클라우드, 유튜브, 암호화폐 등 모든 자산의 플랫폼, 계정 ID, 용도 등을 정리한다. - 비밀번호와 복구 키의 안전한 보관
– 비밀번호 관리자 앱을 이용하거나, 종이 문서로 작성 후 금고에 보관하고, 접근 위치는 가족에게 공유한다. - 디지털 유언장 또는 유산 처리 문서 작성
– 누구에게 어떤 자산을 귀속시킬지, 삭제할지, 공개할지 등 구체적 지침을 명시한다. - 플랫폼의 생전 설정 기능 활용
– 구글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 애플의 디지털 유산 연락처, 페이스북의 계정 관리자 기능 등을 사전 설정한다. - 공정증서 유언 또는 신탁 활용
– 상속 분쟁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공증을 통한 법적 효력을 확보하거나 변호사와 함께 신탁 계약을 설정한다.
이러한 준비는 단순한 재산 정리가 아니라, 가족 간의 신뢰를 지키고 감정적 갈등을 줄이는 도구가 된다. 디지털 시대의 유산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물리적 자산 못지않게 크다. 준비된 사람만이 상속을 ‘갈등’이 아닌 ‘배려’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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