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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디지털 유산 분쟁 시 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디지털 유산, 가족 간 분쟁의 새로운 불씨

과거에는 상속 분쟁이 주로 부동산, 금융자산 등 물리적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졌다면, 이제는 이메일, 클라우드 자료, 유튜브 채널, 암호화폐, SNS 계정 등 디지털 자산이 새로운 분쟁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고인이 생전에 디지털 자산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경우, 남겨진 가족은 누가 계정을 인계받을지, 어떤 자료를 보존할지, 수익은 어떻게 분배할지를 놓고 갈등을 겪는다. 예를 들어 고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월 200만 원 이상의 광고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면, 그 채널 운영권과 수익 권한은 법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는가가 핵심 쟁점이 된다. 또한 고인이 남긴 클라우드 안의 사진, 영상, 기록이 유가족 간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이슈로 이어질 수도 있다. SNS 계정의 운영권을 두고 형제자매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분쟁은 기존의 상속법으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을 수반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법적 절차, 즉 소송으로까지 번지게 되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법적으로 디지털 유산은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현행법상 디지털 유산은 명시적으로 규정된 상속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금전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산은 실질 자산으로 인정되어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는 실질 자산으로 과세 대상에 포함되고 있으며, 도메인, 수익형 채널, 유료 콘텐츠 판매 플랫폼 등도 상속 재산에 포함될 수 있다.

반면, SNS 계정이나 이메일, 클라우드 계정은 대부분 서비스 약관에 따라 '비 양도성' 또는 '개인 사용 한정'으로 명시되어 있어, 소유권보다는 사용권 개념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은 이들 자산의 소유권 이전 여부보다는, 계정에 담긴 콘텐츠의 정보 접근권, 삭제 권한, 제3자 열람권 등에 초점을 맞춰 판결하게 된다. 결국 분쟁이 발생했을 때 소송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것은, 그 디지털 자산의 법적 성격을 먼저 정의한 뒤, 기존 상속법 혹은 민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서비스 제공자의 정책, 고인의 생전 의사, 상속인의 요청권의 충돌이 발생하면 사건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으며, 장기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디지털 유산 관련 실제 소송 사례와 판결 경향

최근 국내외에서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소송 사례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예는 독일의 페이스북 판례다. 사망한 자녀의 계정 접근을 요청한 부모가 소송을 제기했고,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독일 연방대법원은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도 상속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며 부모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인의 사진과 영상이 담긴 클라우드 계정에 대해 형제가 서로 열람 권한을 주장하며 소송에 돌입한 경우, 법원은 사진의 사적 성격, 고인의 생전 공유 의사, 클라우드 계정의 계약자 명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일부 권한은 인정하고, 일부는 제한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한 암호화폐 지갑의 접근 권한을 놓고 유족 간 분쟁이 발생한 사건에서는, 법원이 사망 당시의 지갑 내 자산 가치를 평가하고, 거래 내용을 근거로 분배 방식을 조율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소송은 해결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디지털 자산의 기술적 특성과 약관 구조, 국제 법률 적용 등의 변수가 많아 일반 상속 소송보다 훨씬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소송을 고려하기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5가지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소송으로 이어지기 전에, 상속인은 반드시 법적 리스크와 현실적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아래는 소송을 고려하기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핵심 체크포인트다.

  1. 해당 자산의 법적 성격 파악: 소유권이 존재하는 자산인지, 사용권에 불과한지 구별 필요
  2. 고인의 생전 의사 확인: 유언장, 이메일, 메모, 영상 등 고인의 의사 표시 자료 확보
  3. 계정 약관 및 정책 분석: 플랫폼의 사망자 계정 처리 정책 및 접근 제한 여부 확인
  4. 상속인 간 협의 가능성 검토: 감정적 충돌 최소화를 위한 합의 시도 선행
  5. 소송 비용 및 기간 산정: 장기화 가능성 대비, 법률 전문가 상담 필수

특히 SNS나 유료 콘텐츠 계정은 기술적 권한 이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소송을 하더라도 실질적 인계가 불가능한 경우도 발생한다. 즉, 소송은 최후의 수단이지 항상 현실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향후 제도 개선 방향과 사회적 인식 전환

디지털 유산이 더 이상 특수한 상황이 아닌 보편적인 상속 이슈로 자리 잡고 있는 지금, 법과 제도의 정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먼저 민법에 디지털 유산을 상속 대상으로 명확히 포함시키고, 계정의 소유권, 접근권, 열람권 등에 대한 규정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생전의 디지털 자산 정리와 유언장 작성 문화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현재는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대비해 디지털 계정을 정리하거나 유산으로 남길 것인지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사망 이후 남겨진 가족들이 법적·감정적으로 소모적인 갈등을 겪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플랫폼 기업들도 이용자의 사망에 대비한 디지털 유산 지정자 설정, 자동 삭제 기능, 유언형 메시지 등록 기능을 제공해야 하며, 법원과 정부는 디지털 자산에 특화된 전문 상속 조정절차(예: 디지털 상속 조정센터) 등의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디지털 유산도 명확한 ‘재산’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에 따른 갈등도 실물 자산 못지않게 치열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미리 정리하는 지혜와, 필요할 땐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식과 제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이 문제의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