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디지털화, 상속 구조도 바꾸고 있다
현대인은 금융 생활의 상당 부분을 인터넷과 모바일로 처리한다. 은행 방문 없이도 예·적금 가입, 송금, 대출, 투자까지 모두 스마트폰 하나로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사망했을 때, 남겨진 가족조차 그 사람이 어떤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게다가 종이통장조차 없는 ‘무통장 시대’가 되면서, 인터넷 뱅킹이나 모바일 앱에 남겨진 디지털 금융 자산은 생명보험이나 부동산보다 더 찾기 어렵고 처리도 복잡하다.
특히 증권사 계정은 한 사람이 여러 개를 보유하는 경우가 많으며, 코인 거래소처럼 국내외를 넘나드는 투자 플랫폼도 증가했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상속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현실이다. 단순한 로그인 문제를 넘어, 고인의 금융 자산이 어디에 얼마나 분산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상속인의 가장 큰 과제가 된다.
이처럼 디지털 금융 자산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상속 과정도 이제는 비밀번호, 인증 수단, OTP, 공인인증서, 지문 인식, 보안 앱 같은 기술적 요소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 자산 상속의 첫 단추는 이제 ‘통장’이 아니라 ‘계정 접근’이 되었다.
인터넷 뱅킹 계정의 법적 성격과 상속 구조
금융 계좌, 즉 은행이나 증권사의 예금·주식·채권 등은 민법상 명백한 상속재산에 해당한다. 즉, 상속인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 금융 자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계좌가 오프라인 지점 중심이 아닌, 인터넷 뱅킹·모바일 앱 중심으로 운영될 경우 상속 절차가 기술적으로 훨씬 더 복잡하고, 보안 측면으로도 까다로워진다는 점이다.
현행 금융사 규정에 따르면, 상속인은 고인의 사망 사실을 증명하고 상속 관계를 입증하는 서류(예: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상속인 전체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모바일 앱을 통해 단독 거래를 하던 경우, 거래 내용, 계좌 존재 여부, 잔고 확인조차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일부 고인은 생전에 보안 강화를 위해 복수의 인증 수단을 걸어두었거나, OTP 장치를 별도 보관해 둔 경우 그 정보가 없을 경우 사실상 자산이 '잠긴 상태'가 되어버린다.
증권 계좌도 마찬가지다. 증권사 계정은 원칙적으로 실명 확인만 되면 상속인이 자산을 이전받을 수 있지만, 모바일 증권사 앱(예: MTS 앱)에만 로그인 정보가 있는 경우, 고인의 스마트폰과 인증 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절차가 중단될 수 있다. 또한 일부 증권사는 상속 요청을 받았더라도 주식 매도는 불가능하고, 이전만 허용하는 등 제한이 따르기도 한다.
실제 사례: 상속 과정에서 발생한 디지털 금융 자산 문제
사례 ① : A 씨는 평소 인터넷 뱅킹만을 이용하며, 종이통장을 발급받지 않았다. 사망 후 자녀들은 A 씨가 어떤 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었는지조차 몰랐고, 결국 사망 신고 후 금융감독원 '계좌통합조회 서비스'를 통해 계좌를 확인했지만 모바일 OTP를 이용한 2차 인증 문제로 자산 인출이 지연되었다.
사례 ② : B 씨는 3개의 증권사 앱을 통해 주식과 펀드, ETF에 분산투자하고 있었다. 모든 거래는 본인의 스마트폰과 지문 인증 기반으로만 가능했고, 사망 후 가족은 단순 상속 서류만으로는 자산 확인조차 거절당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법원에 상속인 대표 지정 및 자료 제출 명령을 받아 증권사에 다시 요청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6개월 이상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단순한 정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보안 체계가 사망 이후 상속 절차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다. 아무리 정당한 상속인이라도 계정 접근 정보가 없다면 상속받을 자산이 있어도 ‘잠겨 있는 금고’와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속인을 위한 디지털 금융 자산 관리 전략
인터넷 뱅킹, 증권사 계정 등의 디지털 금융 자산을 효과적으로 상속하려면 고인 본인 또는 가족이 다음과 같은 사전 정리와 상속 준비를 해야 한다.
<생전 준비 항목>
- 계좌 목록화 : 본인이 사용 중인 모든 은행, 증권사, 암호화폐 거래소 계정 목록을 정리
- 접근 수단 문서화 : 로그인 ID, 보안 앱, OTP, 인증 수단 정보를 신뢰할 수 있는 곳에 보관
- 공유 설정 또는 유언장 명시 : 유언장에 디지털 금융 자산의 존재 및 관리인을 명시하거나 상속인에게 알릴 수 있도록 디지털 유산 위임장 작성
- 계좌통합조회 신청 내용 저장 : 금융감독원의 계좌통합조회 내역 스크린숏이나 PDF를 저장해두면 상속 절차가 훨씬 수월해짐
<사망 이후 상속인이 해야 할 절차>
- 사망신고 및 상속인 확인 서류 준비
- 금융사에 상속 통지 및 자산 조회 요청
- 인증 수단 복구 시도 또는 정식 폐기 요청
- 주식·채권 등의 이전 또는 청산 절차 진행
- 금융감독원 ‘금융 유산 상속지원센터’ 또는 법률 전문가 자문 활용
디지털 금융 자산은 자산 가치가 큰 만큼, 상속 절차의 복잡성도 크다. 사전 준비와 사후 절차를 병행하지 않으면, 실질적 자산 이전에 실패하거나, 과세 누락, 법적 분쟁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제도적 보완과 디지털 금융 유언문화의 필요성
디지털 금융 자산의 상속이 일반화되고 있는 만큼, 정부와 금융기관, 법률 시스템 모두에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첫째, 금융사들은 사망 시 계정 접근을 위한 간소화된 절차와 상속 전용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망 사실을 증명한 뒤에도 계정 접근을 막거나 앱 인증만을 고집하는 구조는 불합리하다.
둘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디지털 금융 자산 상속 매뉴얼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계좌 통합조회 시스템의 정확성과 실시간 반영 수준을 높여야 한다. 또한 증권사나 인터넷은행 중심의 ‘디지털 상속 표준 절차’ 마련도 필요하다.
셋째, 사용자 자신도 디지털 금융 유언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종이 유언장에 통장번호를 적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클라우드에 보관된 계좌 목록, 인증 정보, 자산 분배 의사를 법적 효력을 갖춘 디지털 문서로 남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디지털 상속이란 단지 계정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자산과 신뢰, 의사를 함께 전달하는 행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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