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디지털 공간에 흔적을 남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 친구와 나눈 메시지, SNS에 올린 글, 구글 계정에 저장된 이메일과 문서들까지 모두 디지털 공간 속에 축적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만약 내가 내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면, 이 모든 정보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평소 무심코 남긴 온라인 흔적은 사망 이후에도 그대로 인터넷에 남아 있고, 그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배경에서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이라는 개념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많은 사람은 본인의 사망 이후 이러한 온라인 흔적이 어떻게 처리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유산이란 무엇인지,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살아있을 때 그 흔적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디지털 유산의 정의와 구성 요소
디지털 유산은 사망자가 생전에 남긴 모든 디지털 자산을 의미한다. 이 범위는 이메일 계정, SNS, 사진과 동영상, 클라우드에 저장된 문서, 블로그나 웹사이트, 심지어 유튜브 수익 계정, 디지털 화폐까지 포함된다.
과거에는 유산이라 하면 부동산, 예금처럼 물리적인 자산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온라인상의 디지털 흔적 역시 사회적, 법적 가치를 갖는 자산으로 인식된다. 단순한 데이터뿐만 아니라 금전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산도 포함되며, 이러한 요소들은 실제 상속이나 법적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가장 큰 문제점은 고인이 남긴 계정에 접근하지 못해 가족들이 중요한 정보를 잃어버리거나, 가상화폐 지갑에 접근할 수 없어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자체 정책을 운용하고 있어, 해당 플랫폼에 저장된 자산은 단순히 "삭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속" 또는 "보존"이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망 후 디지털 자산은 어떻게 처리되는가?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디지털 유산에 대한 계획 없이 사망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유언장에 온라인 계정이나 디지털 자산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계정 접근 권한조차 공유되지 않는다. 게다가 플랫폼별 정책도 제각각이라, 구글은 '비활성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제공하지만, 일부 국내 서비스는 가족이 사망 사실을 증명하더라도(공식적인 사망 증명서, 관계 증명서 등을 제출하더라도) 계정 접근이 어려운 구조다. 이는 계정 자체가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플랫폼은 개인정보 보호 원칙에 따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정의나 보호 체계가 정비되지 않았고, 대다수의 플랫폼은 이용 약관만으로 관련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유산은 사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적 제도와 법률 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망 이후 디지털 자산의 처리 방식은 사용하는 플랫폼에 따라 다르며, 사전에 설정한 계정 관리 옵션이 있는 경우 유족에게 권한이 이전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구글은 사용자가 일정 기간 활동하지 않을 경우 특정인에게 데이터 접근 권한을 위임할 수 있도록 한다. 애플은 2022년부터 ‘디지털 유산 연락처(Legacy Contact)’ 기능을 도입하여, 사망자의 아이클라우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자산 처리 방식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가족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가?
많은 유족은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고인의 사진이나 영상, 혹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재무 관련 이메일 등을 찾기 위해 고인의 계정에 접근하려 하지만, 법적·기술적 장벽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거나, 2단계 인증이 설정되어 있다면 접근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고인의 온라인 자산은 사실상 ‘디지털 유령 계정’으로 남게 되고, 그 안에 저장된 중요한 정보도 함께 잃게 된다. 특히 유튜브나 블로그처럼 수익이 발생하던 자산의 경우, 미처 수익금 출금도 하지 못한 채 동결되며, 이는 재산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망자의 사진첩 접근을 두고 가족 간 분쟁이 발생한 사례가 있으며, 이는 '디지털 상속'이라는 개념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생전에 준비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 관리법
디지털 유산을 잘 관리하려면 생전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 자신이 보유한 주요 온라인 계정 리스트(SNS, 이메일, 사진, 동영상, 클라우드, 블로그 등)를 정리하고, 이에 대한 접근 정보나 삭제 요청 방식 등을 메모하여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둘째,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정보라도 공유하거나, 디지털 유언장이나 비밀번호 관리자 앱을 활용해 유족들에게 자동으로 전달하는 체계를 만들 수도 있다. 셋째, 구글이나 애플에서 제공하는 ‘사후 계정 관리자(legacy contact)’ 기능을 설정해 두면 큰 도움이 된다. 사후 계정 관리 기능을 설정해 두면 장시간 로그인을 하지 않았을 경우 계정이 삭제되거나 계정 관리 주체가 유족들에게 넘어가는 기능이 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간단한 메모 형식의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디지털 세대인 우리가 죽은 후에도 남의 정보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남은 가족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